맨손의 카리스마 유리 테미르카노프
2008,11,12, Wednesday
예술에 유혹되다.....
오후 예술의전당 서양미술 거장전에서 렘브란트를 만났다.
그의 etching속 모습은 또 다른 사색의 시간을 갖게하였다.
2시간동안 의 여유로움에서 루벤스의 강렬함은 보너스 였다.
예당의 ST,Petersburg philharmonic orchestra 연주 포스터를 보며
보고싶다 라는 생각을 하면서 사무실 근처에 왔을때
전화 한통화는 저녁미팅 약속을 잊고 다시 예당으로 이미 향하게 하였다.
"오후 8시 콘서트 홀 상트 페테르부르크 연주회 함꼐갈래요?"
티켓은 여유가 있었지만 두시간이 채못되는 여유와 퇴근길의 도로는 주차장이였다.
서초동 근처에 살고있는 음악을 좋아하시는분들께 긴급 연락을 하였다.
다행스럽게 30분전에 도착하여 숨을 고를수 있었다.
조금은 흥분된 호흡을 가다듬으며 순간의 바램이 생각지도 않게 이루어진것에대해
끌림의법칙이라는 행복함을 느껴본다.^^
Yuri Temirakanov
오는 12월이면 70세가 된다는 맨손의 거장 유리 테미르 카노프
그와 의 첫만남에서 난 숨을쉴수가 없었다.
정중하고도 천천히 등장한 지휘자에겐 지휘봉이 없었다.
연주자와 관객들과의 사이에 지휘봉이라는 도구를 사양한
지극히 아나로그적 인 노장의매력에 기꺼이 유혹당하고 싶었다.
어쩌면 그의 맨손의마법에 걸리고 싶었는지도....
그와함께 챠이코프스키를 가장 러시아적 감성으로 전달한
상트 페테르브루크 오케스트라단원들 구성은
젊은 연주자에서부터 연세지긋한 은발의첼리스트까지 세대의 경계선을 허물며
노련하며 품격있고 세련된 연주로 다가왔다.
물론 뜨거운 열정과 함께....
상트 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은 지금의 명성을 얻기까지 오랜 기간 고난의 세월을 보냈다.
1882년 창단된 뒤 러시아 제정 붕괴와 소비에트 정권 수립,제2차 세계대전 등으로
수없이 많은 굴곡을 겪었다. 1938년부터 50년간 종신 지휘봉을 잡았던 거장 예프게니 므라빈스키 덕분에
세계적인 명성을 쌓았지만 그가 죽은 뒤 페레스트로이카 등으로 다시 한 번 흔들렸다.
이때 등장한 인물이 테미르카노프다. 그는 단원들의 투표를 거쳐 만장일치로
1988년부터 상트 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의 포디엄에 섰다.
당시 수많은 거장들이 서방 세계로 망명했기에 그의 잔류는 더욱 화제였다.
서방으로 망명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우리가 어머니를 선택해서 태어날 수 없듯이
내게는 국가가 그러했다"
-유리 테미르카노프 -
결국 테미르카노프와 상트 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은 부활에 성공했다.
지휘봉 없이 맨손으로 지휘하는 그는 관능적이면서도 이지적인 감수성을 단원들에게 심어줬다.
이후 상트 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은 RCA 등 해외 굴지의 레이블에 레코딩을 선보이며 이름을 떨쳤다.
-한국경제 기사 -
젊고 건장한 피아니스트인 데니스마추에프 의
피아노 <협주곡 제1번 b단조 Op.23>
연주는 관객을 열정의 늪으로 빠지게 하였다.
Denis Matsuev
기립박수로 도 부족한 그의 강렬한 연주에서
다른 발견을 할수 있었다.
테미르카노프와의 보이지 않는 연결선은
은발의 지휘자의 부드러운 미소 였다.
오케스트라에서 피아노연주로 넘어갈때는
어김없이 그윽하고 부드러운 눈빛과 입가의 머금은 미소가
지휘봉을 대신하였다.
테미르카노프는 맨손도 아닌 표정으로 피아니스트와 통하고 있었다.
새로운 경험이었다.
마지막 곡
"1812" 서곡 Op.49
이 곡은 챠이코프스키가 나폴레옹과의전쟁에서 패배하던 러시아 군대가
역전하며 나풀레옹을 퇴각케한 스토리를 1880년에6주에 걸쳐 작곡한 곡으로
우리나라에서도 냉전시대엔 공산국가의 곡이라 하여 금지되기도 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클래식 음악 애호가들은 비밀리에 감상하는 짜릿함을 느꼈을것이다.
금지된것에 대한 쾌감은 더 강하고 오랫동안 그감동이 이어졌으리라
얼마전 드라마를 통해 조금은 더 대중에게 익숙할수도 있었다.
이번 공연에서 관악기 들이 갑자기 일어서며 연주하는
역동적인 장면을 연출하는 펄포먼스적 감동 서비스를 보며
음악으로만 듣는 감동과
시각적 효과와 함께 감상하는 오케스트라의 매력은
온몸을 전률케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공식적인 야외행사 등에서는 실제 포탄을 쏘면서 음향효과를 더 실감나게 연출한다고한다.
관객마져도 연주를 한듯한 착각이 들게한
마법의연주에 온몸이 탈진한 듯 하여 일어설땐 현기증 으로 어지럽기 까지 했다.
관현악의 역동적이며 힘찬 연주엔 모든 근육이 춤을추는듯 했고
섬세하고 부드러운 현악기에선 모든 세포가 춤추는듯 하였다.
숨쉬는 소리가 방해될까 긴장을 늦추지 않은채
모든 악기의 소리들이 각기 살아 있음을 느끼며
그 다른 소리들이 모두 하나가될땐 소름까지 끼치고 있었다.
손끝너머까지 보이지않는 선을달고
음률의 그림자까지 움직이게 하는듯한
맨손의지휘
절제된 그의 손동작과 잔잔한 표정으로
거대한 오케스트라와 하나되는 모습은
어떤 카리스마 보다 아름다운 예술적 리더쉽을 보여주고 있었다.
따스하고 온화한 아나로그의
휴머니즘이 내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형식적인 오버된 펄포먼스 는 없었다.
예술가들을 통한 감성적 카리스마는
이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리더쉽으로 진화되지 않을까 하는
성급한 희망을 기대하고싶다.
마지막으로 7번의 커튼콜을 기립박수로 이끌어낸
은발의맨손거장은
열광하는 관객들에게
짧고도 멋진 그러나 이유가 있는
발레음악 <호두까기 인형>중 "트레팍 "을 귀여운 <?>몸사위와 함께 선물하였다.
곧 다가올 크리스마스 를 염두에둔 .....*^^*~
12월은 역시 챠이코프스키 ! ...ㅎ
아쉬움이 남는것은 다음날 공연한 "비창" 을 못본것이다.
2009년 엔 비창을 염원하며
어려운 시기에 이런 좋은 공연을 볼수 있게한 기업들의 메세나 사업을 통한
문화적 사회환원에 대해 감사 하고싶다.
R석의 한가운데 서서 기립박수를 칠때
연주자와 바로 정면으로 보게되었다.
예견되지 않았던 초대라 가벼운 스웨터차림일수 밖에 없던 나는
정중한 연주복으로 관객에게 예를 갖춘 지휘자와 연주자들에게
미안한 마음에 커다란 박수소리와 달리 자꾸 좌석밑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PS: 러시아 음악의 심장이라고 불리는 챠이코프스키를 러시아 최고의 오케스트라 를 통해
볼수 있었던 행운을 준 지인 김 선생님 께 감사 드립니다.
에어의 사랑하는 블로그 벗님들께도 이 감동 그대로 전해드리고 싶지만
다음 의 음악방에 없어서 대신 다른 오케스트라 연주로 "1812"서곡을 올려봤습니다.
우울한 경제에 이 곡처럼 역전을 이루는 희망을 갖기를 바라면서....
사랑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