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예순 살 모델입니다.우노초이
우노초이, 나는 예순 살 모델입니다
잘나가는 주얼리 디자이너로 살다가 다시 모델이 되겠노라 선언한 단추 작가 우노초이. 그녀의 마음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앤티크 주얼리 디자이너 혹은 단추 작가라고 불리는 우노초이는 원래 패션모델이었다.
20대에서 30대에 걸쳐 13년여간 미국에서 모델 활동을 했다.
짧지 않은 기간 동안 공백기를 가진 후 쉰이 넘은 나이에 주얼리 디자인을 시작한 그녀는 이후 작가의 삶을 살아왔다.
그렇게 10년, 그녀는 다시 모델이 되겠다고 선언했다. 그녀의 마음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10년 전에 단추를 소재로 디자인을 시작했어요. 그 전까지는 디자인과 관련해 이렇다 할 이력이 없었죠.
그러다 보니 젊은 시절 모델로 활동했던 이야기가 대신 따라붙곤 했어요. 그래서 사람들은 저를 ‘모델 출신 디자이너’라고 불러요.
‘모델 출신이라 그런지 비주얼이 남다르다’는 말은 곧잘 듣는데, 정작 문제는 제가 미국에서 활동을 했기 때문에
저의 모델 시절 모습을 본 사람이 거의 없다는 거예요. 그렇다면 다시 모델 데뷔를 해보자 싶었어요. 내 나이 예순에 말이에요.”
그녀의 말대로 지금은 ‘롱 라이프’ 시대이고, 인생은 60부터라는 말이 낯설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예순 살의 모델이 설 자리는 얼마 되지 않는다. 반대로 그 희소성 때문에 비교 불가의 경쟁력을 갖게 될 수도 있겠지만.
“물론 내가 설 수 있는 무대가 많지 않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많지 않아도 괜찮고 꼭 화려한 무대가 아니어도 상관없어요.
나로서는 내게 늘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타이틀을 검증한다는 것 자체로 의미가 있는 일이니까요.
모델에서 디자이너로 그리고 다시 모델로, 한편으로는 원점으로 돌아가는 일이기도 하고요.”
그녀의 역사 가운데 모델이었던 때로 돌아가는 일, 그녀는 지금 ‘거꾸로 인생’ 여행을 꿈꾸고 있다.
여행을 준비하는 순간이 언제나 설레듯 그녀로부터도 들뜬 마음이 느껴졌다.
“다시 모델로 데뷔해야겠다는 생각만으로도 긴장감이 샘솟아요. 잊고 있던 프로페셔널한 마인드가 되살아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젊은 시절 촬영을 앞두거나 쇼를 할 때면 음식을 거의 먹지 않았어요. 일단 립스틱을 바르고 난 후에는 일절 먹지 않았죠.
그때만큼은 아니어도 이번 기회를 통해 다시 스스로를 돌아보고 관리하게 되었다고 할까요.
외국에서는 제 나이에도 관리가 잘되어 있는 멋있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잖아요. 저라고 왜 안 되겠어요?
젊은 사람들이 보기에 나도 그런 사람이면 좋겠어요. 우리나라에서 예순 살 모델이 데뷔하기란 쉽지 않아요.
쉽지 않은 도전을 하는 저를 보면서 누군가 ‘나도 저렇게 나이 들면 좋겠다’라고 말해준다면 저에게 그보다 좋은 축언은 없을 거예요.”
피사체로서 그녀는 굉장히 포토제닉한 사람이다. 그 남다른 표현력은 아이러니하게도 표현하지 않는 것으로부터 나오는 듯했다.
카메라 앞에서 일부러 연출하지 않고, 계산하지 않은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은 드문데, 그녀는 자신을 보여주는 데 두려움이 없었다.
“왜냐하면 저는 제가 굉장히 마음에 들거든요. 눈이 작고 얼굴이 네모나고 나이가 들어 주름도 생겼지만 그 모습마저 만족스러워요.
오늘 헤어 디자이너가 머리를 짧게 잘라보자고 제안했을 때 쉽게 그러자고 한 것도 머리가 짧든 길든 저는 상관없기 때문이에요.
겉모습은 달라져도 ‘나’ 라는 사람은 변하지 않으니까요.”
나는 나를 참 좋아하는 사람
많은 사람들이 ‘나’보다는 ‘남이 보는 나’를 더 신경 쓰는 시대, 많은 인문학자와 철학자들이 ‘내 안의 힘’을 길러야 한다고 강조하는 분위기 속에서
이토록 자기애가 충만한 사람을 만났다는 것은 신선하고 반가운 일이다.
“칭찬 덕분일까요.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늘 칭찬을 해주셨어요.
제 본명이 은생인데, 아버지로부터 ‘우리 은생이 잘하네’ 소리를 공기처럼 듣고 자랐던 것 같아요.
지금은 남편으로부터 끊임없이 칭찬을 받고 있어요. ‘당신은 어쩜 이 나이에도 이렇게 향기가 좋아?’ ‘당신에게는 우유 냄새가 나’
‘민얼굴이지만 분위기 있어 보이고 좋아’라고 하면서 언제나 좋은 말을 해주죠.
그렇게 칭찬을 받으면 저는 또 100% 믿고 흡수하는 사람이에요. ‘정말인가?’ ‘인사치레겠지?’ 하면서 의심하는 마음이 전혀 안 생겨요.
그건 제 복인 것 같아요. 칭찬을 들으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금세 기분이 좋아지니까요.”
그녀는 순간의 기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디자이너로서 작품 활동을 할 때나 모델로서 카메라 앞에 설 때에도 순간적인 느낌에 충실한 쪽이다.
오랜 시간 심각하게 고민하거나, 고통 끝에 결과물을 완성해내는 스타일과는 거리가 멀고,
직관력과 눈에 보이는 사물을 이미지화시키는 능력이 탁월한 유형에 속한다.
“저는 쥐어짜며 일하는 스타일이 아니에요. 제 작업은 늘 즐겁죠. 저는 많은 재료들 가운데 가장 예쁜 것부터 쓰고,
음식을 먹을 때도 가장 맛있는 것부터 먹어요.
그 순간 제일 좋고 예쁜 것에 반응하죠. 그래서 아이디어 노트 같은 것도 따로 없어요.
아이디어를 저장해두지 않기 때문이에요. 제게 아이디어는 매 순간 새롭게 피어나는 것이에요.
작업 테이블에 앉는 순간 상상을 시작 하고 바로 작품으로 완성해요. 상상은 오래 머무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대신 평소 풍부한 감수성을 유지하기 위한 그녀만의 방법이 있었다.
“전 집에서 쓰는 사소한 물건들도 예쁜 것들을 써요. 왜, 여자들이 임신하면 예쁜 것만 보고 예쁜 것만 쓴다고 하잖아요.
그래야 예쁜 아이를 낳는다고 하면서요. 저는 늘 임신한 여자처럼 살고 있어요. 밥을 먹을 때에도 반듯한 그릇에 담아 깨끗하게 차려놓고 먹죠.”
그녀가 늘 새로운 작품을 만들고, 스스로를 표현하는 데 있어 자유로울 수 있는 또 하나의 비결은 고정 관념이 없기 때문이다.
“Why not?” “That’s good”은 그녀가 가장 자주 하는 말이다.
“어느 정도는 미국 생활의 영향도 있을 거예요. 그곳에는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하는 것들이 별로 없으니까요.
저는 옷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오리고 잘라서 다른 스타일로 만들어 입고요,
새로 산 운동화가 조금 낀다 싶으면 가위로 칼집을 내서 넉넉하게 만들어 신어요.
그러다가 더러워지면 색을 칠해서 신죠.
그런 것들이 아깝다거나 두렵다는 생각은 전혀 안 해요. 왜냐하면 제가 하는 일이니까요.”
스스로 원해서 한 일이기 때문에 그 결과에 틀림이란 있을 수 없다는 논리다.
언제나 답은 자기 안에 있다는 것이 그녀의 철학. 자기 안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위해 그녀는 최대한 심플한 일상을 살고 있다고 했다.
“저는 많은 것을 하지 않기 때문에 필요한 순간에 열중할 수 있어요.
디자인 작업을 할 때면 밥도 안 하고, 빨래도 안 하고, 앉은 자리에서 8시간씩 오로지 작업만 하죠. 굉장히 집중하는 스타일이에요.
그래서 휴식이 필요한 거고요.
사람들은 제가 굉장히 활달하고 많이 돌아다닐 거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예요.
바쁜 것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죠.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한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오늘같이 촬영이 잡혀 있을 때는 카메라에 잡힌 내 모습을 머릿속에 가만히 그려보는 거예요.
어떤 옷을 입고, 어떤 화장을 하게 될까. 저는 그런 것들이 머릿속에 잘 그려지는 편이거든요. 상상을 하는 거죠.”
그녀는 집중할 대상을 제외하곤 한눈을 파는 법이 없다.
과거 미국에서 모델활동을 할 때에도 자신이 속해 있는 에이전시로부터 주어지는 일 외의 일은 해본 적이 없다고 한다.
동료 모델들은 여러 매체와 다양한 일을 할 때였는데,
그녀는 에이전시에서 연결해주는 일이 언제 잡힐지 몰라 한 달을 풀로 비워놓곤 했단다.
어떤 면에서는 고지식한 면이 있는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다.
성향이 이렇다 보니 이 일도 하고 저 일도 하면서 여러 가지 문제를 조율하며살아야 하는 삶은 그녀와 맞지 않는다.
“제 머릿속은 제가 원할 때만 복잡해져요.
필요하지 않을 때는 절대적으로 심플하죠. 일부러 의도하는 게 아닌데도 저절로 그렇게 되는 걸 보면, 이 점 은 타고난 면일지도 모르겠어요.”
다행히 그녀에게는 생활적이지 못한 부분을 채워주는 소울메이트가 있다.
집안일을 하고, 운전을 하고, 그 밖의 소소한 생활 문제를 담당하는 것은 그녀의 남편 ‘빈센트’다.
중국계 미국인인 그는 그녀가 창작 활동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조력자이자 그녀로 하여금 더 과감한 도전을 할 수 있도록 자극을 주는 사람.
가장 가까이에서 그녀에게 영감을 주는 사람이기도 하다.
“저보다 훨씬 마음이 열려 있는 사람이에요. 제가 상상하는 것 이상을 이야기해주죠.
늘 저보다 한 발짝 더 나아가는 사람이라고 할까요. 파격적인 생각을 잘해요.
어쩌면 저보다 더 수준 높은 아티스트라는 생각도 들어요. ‘더’ ‘더’ 하면서 저를 자극하죠.
오늘도 집에 가서 자른 머리를 보여주면 ‘좀 더 짧게 자르지 그랬느냐’고 할지도 몰라요.”
1980~1990년대 미국에서 모델로 활동하던 시절의 모습.
20대와 30대를 모델로 살아온 그녀는 10여 년 전부터 앤티크 주얼리 디자이너로서 작품 활동에 매진해 왔다.
그리고 최근 다시 모델의 삶을 살아보겠노라 선언했다
다시 모델 을 하겠다고 선언했을 때에도 무조건 찬성. 몸매 관리가 필요하지 않겠느냐면서 그녀가 식단 조절을 할 수 있도록 신경 써주는 것도 빈센트다.
“한편으로 저는 다분히 이기적이기도 해요. 맛있는 게 있으면 제가 먼저 먹지, 빈센트에게 먼저 주지 않아요.
한번은 자두나무에 자두가 3개 열렸는데, 하나를 먹어보니 너무 맛있는 거예요.
빈센트가 운동 갔다 돌아올 시간이 가까워 와서 기다렸다 챙겨 줘야지 하는 마음도 잠시, 나머지 두 개도 제가 다 먹어버렸어요.
제가 맛있어 하면 빈센트는 괜찮다고 하면서 자기가 먹을 것도 저를 주곤 하죠. 그럴 때 저는 또 사양하지 않고요.
이것도 제가 저를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설명을 해야 할까요(웃음).”
스스로 이기적이라고 고백했지만, 정말 순수한 사람이 아니고서야 이런 일로 본인을 이기적이라고 표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순수’에 대하여 사전에서 풀이하고 있듯 ‘전혀 다른 것의 섞임이 없음’ ‘사사로운 욕심이나 못된 생각 이 없음’이라는 표현 정도가 그녀에겐 걸맞지 않을까.
그녀가 가진 사고의 자유로움, 표정의 자연스러움은 전부 그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저는 이혼도 한 번 했고, 아이도 없고, 대학을 완전히 졸업하지도 못했어요.
그럼에도 그것들이 죄스럽거나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을 보면 내면에 저를 믿고 좋아하는 힘이 크기 때문인 것 같아요.
자신감하고는 좀 달라요. 자기애라고 하는 게 더 맞을 것 같은데, 저는 저에 대한 애정이 크기 때문에 저를 다치게 하고 싶지 않고, 모든 것이 제 중심이에요.
만약 저에게 자기소개서를 써보라고 한다면 ‘자신을 참 좋아하는 우노초이’라고 쓰지 않을까요.
끊임없이 달라지고, 새로운 내가 있으니 다른 롤 모델은 필요 없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할 줄 알고, 여전히 날개 달고 하늘을 나는 상상이 가능한 예순 살의 여인. 이제부터 그녀의 직업은 모델이다.
그녀는 머릿속에서 이미 자기만의 무대를 완성했으리라.
기획_조영재 | 사진_서원기
(여성중앙 2016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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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처음 만난건 2007년 청담동 서미 앤 투스(Seomi & Tuus)갤러리 였다.
블로그 초창기시절 블벗이였던 그녀가 첫 개인전에 초대를 했고 기꺼이 달려가 반짝이는 작품들을 볼수 있었다.
환한 미소로 반갑게 맞아주며 작품에 대해 열정적으로 설명해주는 그녀의 첫인상은 화장기 없는 생 얼과 검고 긴 생머리가 눈에 들어왔다
마르고 키가큰 인위적인 느낌이 없는 자연스러운 모습이였지만 강한 아우라가 느껴졌었다.
첫 전시라 많은 작품은 아니였지만 주로 엔틱 소품에 라인 스톤 (모조보석) 으로 -Re -design 한 유니크한 커스텸 쥬얼리들이였다.
그때도 자신의 작업에 대한 자부심과 열정이 넘치는 그녀를 보며 예사롭지않은 작가적 면모를 볼수 있었다.
노화의 진화설에 의하면 실제나이 x 0.7 = 현재 나이 가 된다면 그녀는 42세 ! 고혹의 절정 화양연화에 도달한것이다.
최근 국내외적으로 프로페셔널 시니어들의 현역복귀 이슈들을 보면서 느끼는것은 끊임없이 도전하는 열정이야 말로
anti-aging 의 진정한 해법이 될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노초이 그녀의 귀환을 누구보다 두팔벌려 환영하며 반짝반짝 빛나는 삶의 무대가 되기를 바란다. 마치 그녀의 작품속 유리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