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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도시, 성형수술 도시 [스크랩]

Joen_Blue 2009. 10. 7. 02:05

2009.10.6.화요일

 

 

한경구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문화 인류학

 

사람의 아름다움을 외모 위주로 판단하면 잘못이라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성형수술에 빠져있듯이
우리들의 도시 또한 수술열풍을 앓고 있다

종로구 사직동에서 태어나 거의 이십팔년을 한곳에서 살았던 나에게 세종로는 정겨운 거리다.

유학과 지방 근무 등으로 한동안 뜸했지만 십년 전부터는 다시 거의 매일 세종로를 지나다녔다.

그러다 올봄에 직장을 옮긴 뒤부터는 일주일에 한번 지날까 하는 정도가 되었는데, 처음에는 조금 아쉬운 것 같았지만 이제는 그렇지도 않다.

아니, 차라리 자주 안 보니 다행인 것 같다. 공연히 욕심 부리다 성형수술로 망가진 사람처럼, 보는 것이 가슴 아프니까.

그 좋던 은행나무조차 사라져 버리고 나니 눈을 둘 곳이 없다. 하마터면 쫓겨날 뻔했던 이순신 장군의 동상은 뒤를 받쳐주던 군사를 모두 잃은 듯

오도카니 외롭게 서있고, 희뿌연 돌과 콘크리트는 온통 울긋불긋한 꽃을 심은 화분으로 어지럽다.

색깔은 화려하고 구경꾼과 경비요원으로 인파는 넘치지만 생각할수록 어처구니가 없다.

멀쩡하게 잘 있던 수십 그루의 아름드리 나무를 수억원이나 들여서 옮겨버리고 그 자리에 인공의 냄새가 진동하는 화분을 늘어놓아야 할 만큼

중요하고 시급한 이유가 무엇이었던가?

광장을 조성하기 위해서라고? 바로 근처에 서울광장이 있는데 왜 또 광장을 만들어야 하나?

최인훈의 〈광장〉을 읽으며 자란 탓에 광장에 대한 콤플렉스라도 있는 것일까?

가슴을 열고 대화하고 소통하려는 노력 대신 주장만 난무하는 가운데 광장은 열심히 만들어졌는데 축제는 좋지만 시위는 안 된다니,

 과연 "밀실에서 광장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정작 필요한 것은 우리 마음에 광장을 만드는 일 아닐까?

수십년 동안 세종로를 지키던 은행나무는 일본이 세종로의 중심축을 틀어놓으려 심은 것이라는 죄목(?)으로 하루아침에 쫓겨났다.

 은행이 도쿄(대학)의 상징이라는 혐의가 추가되었다고도 하는데, 공자가 행단(杏壇)에서 가르쳤다는 사실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던 것 같다.

일제가 훼손한 우리의 중심축을 원상회복하겠다는 비분강개 앞에 누가 감히 나무의 생명을 말할 수 있었으랴!

그런데 세종로와 경복궁은 원래부터 축이 달랐다는 아주 조심스러운 목소리도 들린다.

대문과 도로가 직통으로 만나는 것은 서양에서 들어온 근대적인 발상일 뿐, 우리의 전통풍수는 오히려 그런 것을 꺼렸다고 하던데….

경복궁은 조선의 정궁이므로 광화문을 제 위치에 다시 지어 세종로를 국가상징거리로 만들겠다는 위풍당당한 발상에 대해서도 항변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자연지형을 그대로 살리며 지은 아담하고 편안한 창덕궁이 오히려 우리의 상징으로 더 적합한 것 아닌가?

 조선시대 전체를 볼 때 가장 오래 정궁으로 쓰인 것은 창덕궁이 아니던가? 숙종, 영조, 정조 등 조선 후기의 쟁쟁한 임금들도 경복궁을 다시 짓지 않았는데,

 오늘날 되새길 것은 바로 그런 마음이 아닌가? 경복궁은 대원군이 국가와 왕실의 위엄을 높이려 온갖 무리를 다해 재건했다가

결국 나라 살림을 망치고 멸망을 앞당기게 되었는데, 하필이면 왜 그런 어리석고 나쁜 정치를 상기시키는 것을 굳이 미래 한국의 상징으로 하겠다는 것인지?

더구나 세종로라는 이름이 이미 세종을 기리고 있고 거기에 세종문화회관까지 있건만, 세종로니까 세종대왕 동상이 반드시 길에 있어야 한다니!

퇴계로, 율곡로, 원효로, 을지로 등도 그러려는가?

사람의 아름다움을 외모 위주로 판단하는 것이 잘못이라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성형수술에 빠져있듯이

우리들의 도시 또한 내면의 아름다움을 추구하기보다는성형수술 열풍을 앓고 있다는 느낌이다.

 유람선 띄우려 수중보를 설치하니 한강은 호수처럼 되어버렸고 그 넓던 강변 백사장은 콘크리트에 묻혀 전설로만 남았다.

교량에까지 분수를 설치하고 언덕 많은 도시에 억지로 자전거 길을 만들고,

 나무와 풀이 있던 곳을 돌과 시멘트로 덮고는 온실에서 키운 꽃 화분을 잔뜩 늘어놓는다.

전통 복색의 수문장은 마치 근대 유럽 군인처럼 절도 있게 행진을 하며 관광객을 끈다.

 하긴, 동네 뒷산의 산책로 정비도 놀라울 정도다. 이렇게까지 여기저기 손을 댈 필요가 있었을까?

지나가던 어린 여자애가 흉을 본다. "흥. 신비한 맛이 없어졌어."

도시의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 다시 생각해 볼 때다.

삶이 쾌적하고, 적당히 재미있고, 사람들 사이에 대화와 소통이 원활하게 사람 냄새가 풀풀 나고, 건설과 유지 비용은 적게 들고,

에너지 효율도 좋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있으면서 진정한 의미에서 환경 친화적인 거리, 내면이 아름다운 도시가 그립다.

 

출처 : 2009,10월1일 목요일 조선일보 아침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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